작가 김훈은 영웅 안중근의 이야기가 아니라 청년 안중근의 이야기를 담담히 써 내려간다. 화려한 수사로 그럴듯한 대의를 가진 영웅 안중근이 아니라, 담백하게 당 시대를 살아낸 청년 안중근의 이야기로.
바로 이 지점이 잔잔하지만 큰 울림을 주는 지점이다. 호수에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가는 물결이 처음에는 잔잔하지만 멀리 갈 수록 파고가 커지듯이 말이다.
사실 인위적으로 감동을 만들어 내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신파극의 전개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오히려 자연스러운 울림이 마음의 큰 파문을 던진다.
소설 속 안중근 처음부터 마지막 까지 담담하다. 이토를 저격하기로 마음먹을 때, 오랜만에 만난 아내와 자식을 본 순간에도, 심지어 사형대로 올라가는 순간까지
그런 면에서 책 표지에 실린 '영웅'의 그늘을 걷어낸 인간 안중근의 가장 치열했던 일주일이라는 카피는 적확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책 부록에 실린 작가 후기에는 안중근의 거사 이후 주변 인물들이 겪은 이야기가 소개되는데 담담할 수 없는 현실이 있음을 드러낸다. 안중근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박해와 시련, 배반과 굴욕의 이야기를 보노라면 소설 속 안중근처럼 담담하게 현실을 살아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생존해야만 하는 현실은 치열하다. 비루하다. 담담함이 아니라 절실함을 요구한다. 그렇기에 그런 현실을 담담하게 살아낸 안중근이 역설적으로 영웅이 아닐까?
'소소한 즐거움 > 읽은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병완, 퀀텀 독서법 - 이런 독서법도 있다니?! (1) | 2022.12.21 |
---|---|
최병천, 좋은 불평등 : 가끔은 부드러운 실용서적이 아닌 딱딱한 이론서적도 읽어보자. (1) | 2022.12.15 |
같이 읽고 함께 살다, 읽기 공동체를 꿈꾸다 (0) | 2020.10.29 |
독서모임 꾸리는 법, 책으로 시작하는 삶의 변화 (0) | 2020.10.16 |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책을 읽어보니 이상해 보이네요 (0) | 2020.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