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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단상

측은지심 연민과 연대의 마음

by 봄.날. 2020.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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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움은 불행한 사람을 동정하는 데 있다(Human it is to have compassion on the unhappy)." 
 - 조반니 보카치오

오늘 만난 문장입니다.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 등장하는 문장입니다. 약한 자를 배려하자는 생각이 담겨있습니다.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측은지심을 나타내는 말일 것입니다. 다른 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요소 중에 사람은 "관계적 동물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타인과 관계 맺으려는 욕구가 인간을 인간 되게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물론 타인과 관계 맺으려는 욕구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더 다양한 관계적 욕구의 층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다 분석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인간은 매우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오늘 만난 문장을 보며 약한 자를 돕고자 하는 인간 안에 담긴 고상한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우리 사회가 측은지심의 마음을 더 많이 표현하면 좋겠습니다. 측은지심의 문화가 더 많이 생겨나면 좋겠습니다.

 

최근 코로나 19로 인하여 사회적으로 많은 변곡점이 생길 것이라고 말합니다. 변곡점은 사회, 경제, 정치, 문화, 종교 등 모든 영역을 총 망라하여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금새 이런 변화들이 현실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다양한 변화의 변곡점 안에 측은지심의 정신이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 그들이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일 수도 있고, 생판 모르는 낯선 이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건강해야 나도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는 최근의 상황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요즘입니다.

 

한편으로는 코로나 19로 양극화 현상이 더 뚜렷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재난은 가장 약한 고리를 파고들어 갑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한 고리, 연약한 이들이 있는 곳에 더 많은 피해가 생겨납니다.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없는 이들이 고통으로 내몰립니다. 그들을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자유로운 사회가 가난한 다수를 돕지 못한다면 부유한 소수마저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존 F. 케네디

다른 이들을 위하는 삶이라고 해서 그 동기가 순수한 이타성일 필요는 없습니다. 미국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말처럼 다른 이들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 일이라는, 조금은 자기중심적인 의도라도 충분합니다. 내 옆에 있는 이들이 잘 돼야 나도 잘 됩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가 잘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는 세상에서 경쟁을 조금 줄이고, 공존을 조금 더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다른 이를 측은히 여기면 다른 이도 나를 측은하게 여길 것입니다. 우리 모두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부족한 이들끼리 서로 잇대어 살아가면 좀 더 행복한 세상,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서로를 연민하고 연대하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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